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인용된 경우, 상대방의 위자료는 어느 정도로 산정될까. 이혼 소송을 통해 유책배우자의 불륜 등 부정행위가 인정됐다면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물론, 혼인관계 파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원하지 않은 이혼을 하게 된 상대방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책배우자의 부정행위 기간 동안 상대방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塡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사정이 고려되면서 1심에서 3000만 원만 인정된 위자료는 2심에서 2억 원으로 증액됐으며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현재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중 위자료 액수가 5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가사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2일 A 씨가 B 씨에게 제기한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일부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번만에 '예외적으로 인용'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1974년 혼인신고로 부부가 된 A 씨와 B 씨는 자녀 3명을 두고 혼인생활을 했다. 2006년 12월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이혼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9년 1월 법원에서는 "B 씨는 혼인기간 중 다른 여자를 소개받아 만나기도 했고, 일방적으로 가출한 후 A 씨와 연락을 끊었으며 가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C 씨와 부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행동을 했으므로 B 씨에게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고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로서 이유 없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B 씨는 항소했으나 항소가 기각됐고,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돼 그대로 확정됐다.
B 씨는 첫 이혼소송 판결이 확정된 후 약 2년 7개월이 지난 뒤 2016년 6월 A 씨를 상대로 다시 이혼 등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은 첫 이혼소송 판결과 같은 이유로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고, B 씨는 다시 항소했다. 2심에선 이 판단이 뒤집혔다. 당시 2심은 "혼인 파탄의 직접적인 책임은 B 씨의 유책행위에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혼인기간 동안 A 씨와 B 씨 사이에 재산관리 주도권 등을 둘러싼 갈등도 혼인 파탄의 상당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했다. 양측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심리불속행)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이율배반적 행위로 배우자 권리 침해했다면 유책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 전보해야"
이혼이 확정된 지 2년 가량이 지난 뒤 A 씨는 B 씨를 상대로 "이혼청구가 인용됐기는 했으나, 부부 사이의 혼인 파탄의 직접적인 책임은 B 씨에게 있다"며 위자료 5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B 씨가 A 씨에게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반면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 강상욱·이동현 고법판사)는 올해 6월 위자료 액수를 2억 원으로 크게 늘렸다.
먼저 재판부는 유책배우자인 B 씨에게 위자료 지급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라 할지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으로 상대방 배우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A 씨는 두 이혼소송에서 'B 씨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나 B 씨와 이혼할 의사가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왔으나, 만일 A 씨에게도 이혼할 의사가 존재해 A 씨가 먼저 이혼청구를 했거나 B 씨가 제기한 두 번의 이혼소송에서 A 씨가 반소를 제기하면서 위자료를 청구했다면 B 씨의 위자료 지급 책임이 당연히 인정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두 차례 이혼소송에서 B 씨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 청구를 다투는 그 자체가 'A 씨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장기간의 이혼 소송 끝에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역시 A 씨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첫 이혼소송을 제기한 직후부터 B 씨는 A 씨를 상대로 각종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대부분 패소했다"며 "B 씨가 A 씨를 상대로 무리하게 제기한 관련 민사소송 역시 A 씨에게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줬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A 씨와 B 씨는 공동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에 관한 임대보증금 및 차임을 A 씨가 직접 관리하는 대신 B 씨가 A 씨로부터 부동산 임대 수입 중 월 1000만 원을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받기로 약정했으나, 첫 이혼소송 제기한 직후부터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건물인도 및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등 다수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월 1000만 원의 금액은 B 씨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 지분에 해당하는 차임 상당액보다 작은 금액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상당한 기간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 행위를 통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했다면, 그 기간 동안의 유책행위로 인해 A 씨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B 씨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A 씨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다수의 여성들과 여러 차례 부정행위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인 측면에서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진 B 씨의 고의적인 유책행위로 인해 A 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과 같이 원고에게 혼인관계의 파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동안 다수 여성들과 여러 차례 부정행위를 한 피고의 일방적인 이혼청구에 의해 원고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이혼을 하게 된 사안에서 유책배우자가 아닌 당사자가 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은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청구에 대해 그 상대방이 수동적으로나마 이를 수용해 이혼이 성립된 사안이나 △상대방 역시 반소 제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혼을 청구해 이혼이 성립된 사안 등 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손해배상액 산정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