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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판결] 유책배우자 이혼 청구, '예외적' 인용됐다면 "파탄 책임 없음에도 원치 않은 이혼한 상대방 정신적 손…
2023.10.23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인용된 경우, 상대방의 위자료는 어느 정도로 산정될까. 이혼 소송을 통해 유책배우자의 불륜 등 부정행위가 인정됐다면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 것은 물론, 혼인관계 파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원하지 않은 이혼을 하게 된 상대방에게는 높은 기준을 적용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유책배우자의 부정행위 기간 동안 상대방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塡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사정이 고려되면서 1심에서 3000만 원만 인정된 위자료는 2심에서 2억 원으로 증액됐으며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현재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사건 중 위자료 액수가 5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가사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12일 A 씨가 B 씨에게 제기한 이혼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으로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일부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두 번만에 '예외적으로 인용'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1974년 혼인신고로 부부가 된 A 씨와 B 씨는 자녀 3명을 두고 혼인생활을 했다. 2006년 12월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이혼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2009년 1월 법원에서는 "B 씨는 혼인기간 중 다른 여자를 소개받아 만나기도 했고, 일방적으로 가출한 후 A 씨와 연락을 끊었으며 가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C 씨와 부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행동을 했으므로 B 씨에게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고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로서 이유 없다"며 이혼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B 씨는 항소했으나 항소가 기각됐고,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돼 그대로 확정됐다.


B 씨는 첫 이혼소송 판결이 확정된 후 약 2년 7개월이 지난 뒤 2016년 6월 A 씨를 상대로 다시 이혼 등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은 첫 이혼소송 판결과 같은 이유로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고, B 씨는 다시 항소했다. 2심에선 이 판단이 뒤집혔다. 당시 2심은 "혼인 파탄의 직접적인 책임은 B 씨의 유책행위에 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혼인기간 동안 A 씨와 B 씨 사이에 재산관리 주도권 등을 둘러싼 갈등도 혼인 파탄의 상당한 원인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했다. 양측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심리불속행)되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이율배반적 행위로 배우자 권리 침해했다면 유책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 전보해야"


이혼이 확정된 지 2년 가량이 지난 뒤 A 씨는 B 씨를 상대로 "이혼청구가 인용됐기는 했으나, 부부 사이의 혼인 파탄의 직접적인 책임은 B 씨에게 있다"며 위자료 5억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1심은 B 씨가 A 씨에게 3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반면 2심을 담당한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 강상욱·이동현 고법판사)는 올해 6월 위자료 액수를 2억 원으로 크게 늘렸다.


먼저 재판부는 유책배우자인 B 씨에게 위자료 지급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라 할지라도, 혼인관계의 파탄으로 상대방 배우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A 씨는 두 이혼소송에서 'B 씨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나 B 씨와 이혼할 의사가 없음'을 일관되게 밝혀왔으나, 만일 A 씨에게도 이혼할 의사가 존재해 A 씨가 먼저 이혼청구를 했거나 B 씨가 제기한 두 번의 이혼소송에서 A 씨가 반소를 제기하면서 위자료를 청구했다면 B 씨의 위자료 지급 책임이 당연히 인정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두 차례 이혼소송에서 B 씨와의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 청구를 다투는 그 자체가 'A 씨에게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장기간의 이혼 소송 끝에 유책배우자인 B 씨의 이혼 청구가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역시 A 씨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첫 이혼소송을 제기한 직후부터 B 씨는 A 씨를 상대로 각종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대부분 패소했다"며 "B 씨가 A 씨를 상대로 무리하게 제기한 관련 민사소송 역시 A 씨에게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줬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A 씨와 B 씨는 공동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에 관한 임대보증금 및 차임을 A 씨가 직접 관리하는 대신 B 씨가 A 씨로부터 부동산 임대 수입 중 월 1000만 원을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받기로 약정했으나, 첫 이혼소송 제기한 직후부터 B 씨는 A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건물인도 및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 등 다수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월 1000만 원의 금액은 B 씨 명의로 등기된 부동산 지분에 해당하는 차임 상당액보다 작은 금액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상당한 기간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 행위를 통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했다면, 그 기간 동안의 유책행위로 인해 A 씨에게 발생한 정신적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B 씨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A 씨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으면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다수의 여성들과 여러 차례 부정행위를 하는 등 정신적·육체적인 측면에서 우리 헌법이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도 등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며 "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이뤄진 B 씨의 고의적인 유책행위로 인해 A 씨에게 발생한 손해를 전보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과 같이 원고에게 혼인관계의 파탄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동안 다수 여성들과 여러 차례 부정행위를 한 피고의 일방적인 이혼청구에 의해 원고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이혼을 하게 된 사안에서 유책배우자가 아닌 당사자가 받게 되는 정신적 고통은 △유책배우자가 제기한 이혼청구에 대해 그 상대방이 수동적으로나마 이를 수용해 이혼이 성립된 사안이나 △상대방 역시 반소 제기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혼을 청구해 이혼이 성립된 사안 등 보다 훨씬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며 손해배상액 산정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