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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병원’ 투자금 가로챈 동업자…대법원 “횡령죄 성립 안해”
2023.07.07

범죄 행위를 위해 함께 모은 돈을 한 명이 빼돌려도 횡령죄 성립은 안 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횡령 혐의로 재판받아온 ㄱ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의료기기 관련 사업을 하면서 노인요양병원 운영을 계획하고 있던 ㄱ씨는 골프 동호회에서 만난 ㄴ씨 등과 함께 ‘사무장 병원’을 동업하기로 합의하고 2013년 3월 투자금 명목으로 2억5천만원을 받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동업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요양병원 설립도 곧 난관에 부딪혔다.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ㄱ씨는 2014년 2월 개인 채무 변제 목적으로 투자금 가운데 2억3천만원을 사용했다. 검찰은 횡령 혐의로 ㄱ씨를 재판에 넘겼다.


하급심 모두 ㄱ씨 횡령 혐의를 인정했다. 이들의 동업 약정 자체는 의료법 위반이라 무효라면서도 ㄴ씨 등이 낸 돈을 ㄱ씨가 개인적인 용도로 임의로 소비한 행위는 횡령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ㄱ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ㄱ씨 횡령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범죄를 목적으로 돈을 모은 사이이기 때문에 형사법이 지켜줘야 할 보호가치 있는 위탁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범죄 실현을 위해 교부된 돈이라 이들 사이 ‘보호할만한 신임에 의한 위탁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 판결은 횡령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의미에 관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