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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불법파견 차별처우, 10년 치 임금 청구 가능해”...첫 판단
2023.05.18

회생 개시한 경우에도 손해배상 청구 가능...관리인 책임도 인정 


불법파견 시 받지 못한 임금 차액을 청구할 때 3년 치가 아닌 10년 치 임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첫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임금을 청구하면 임금채권 소멸시효 3년이 아닌 불법행위 손해배상 소멸시효 10년이 적용된다는 판단이다. 기존에는 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없어 하급심이 엇갈리던 상황이었다.

 

대법원은 이 외에도 정년이 지난 근로자의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과 회사가 회생 절차를 개시하는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도 내놨다.

 

2일 노동법률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재판장 이흥구)는 삼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삼표를 상대로 낸 근로에 관한 소송에서 이같이 판단했다.

 

이날 대법원에서는 근로자들이 제기한 동일한 쟁점의 소송 8건이 함께 선고됐다. 4건은 대해서는 상고 기각, 4건은 일부 파기 환송이다. 결론은 다르지만 취지는 모두 같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이 삼표의 근로자고 삼표는 차별적 처우에 따른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대법 "불법파견 임금, 10년 치도 청구 가능"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삼표 하청업체 유진에서 일하던 근로자다. 유진은 삼표 삼척공장의 컴프레서, 펌프, 보일러 등을 운전하고 점검하는 업무를 수행하던 하청업체다.

 

근로자들은 2018년 삼표를 상대로 자신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소송을 냈다. 또, 삼표가 직접 고용하지 않은 기간에 발생한 정규직 근로와의 차별적 처우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파견법 21조는 동종ㆍ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사용사업주의 근로자와 파견근로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은 소멸시효다. 임금채권 소멸시효는 3년이다. 불법파견이 10년간 지속됐더라도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3년 치 임금만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차별적 처우, 즉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접근하면 달라진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는 10년이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10년 치 임금 청구도 가능해진다.


기존에는 임금채권 소멸시효 3년을 적용하는 게 정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소멸시효 10년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이 여럿 나오면서 이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소멸시효 10년이 적용된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다. 이 쟁점에 대해 대법원 명시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는 민법 766조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봐 소멸시효 3년이 완성됐다는 삼표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이 판단은 정당하고 소멸시효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했다.

 

정년이 지난 근로자의 손해배상액을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도 내놨다. 차별적 처우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기준이 되는 것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파견근로자와 동종ㆍ유사 업무를 하는 근로자의 임금이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 중에는 삼표 단체협약상 정년이 지난 근로자도 포함돼 있었다. 그가 삼표의 근로자였다면 정년퇴직했을 시점 이후에도 근로하면서 손해배상액을 얼마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원심은 '정년이 지나지 않은 삼표 소속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고 봤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근로자의 비교대상은 정년을 경과해 동종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삼표의 정규직 근로자 또는 촉탁직 기간에 근로자 등이 돼야 한다"며 "이와 같은 근로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년 미경과 상태의 삼표 근로자를 비교대상 근로자로 삼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년이 지나지 않은 근로자를 비교대상 근로자로 삼는 경우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정년이 경과한 사정 ▲임금피크제로 임금이 감액된 정도 ▲근로자가 구체적으로 수행한 업무의 내용과 범위ㆍ권한ㆍ책임 ▲동종 사업장의 관행 ▲사용사업주가 정년퇴직한 근로자를 일시적으로 고용한 적이 있다면 그때 지급한 임금과 퇴직 전 지급한 임금의 차이와 비율 등 제반 사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법원은 "이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별적 처우가 없었더라면 받았을 적정한 임금을 기준으로 한 후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 차별인지 여부를 판단하고 손해액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 "회생 개시돼도 차별처우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

 

이번 사건에서는 회사가 회생 절차에 들어간 경우 직접고용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도 쟁점이 됐다.

 

삼표는 2013년 서울중앙지법에서 회생개시결정을 받아 2014년 3월 회생계획인가결정을 받았다. 회생절차는 2015년 3월 종결됐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회생절차가 개시되기 전 발생한 채권은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회생절차 이후인 2018년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 쟁점이 불거졌다.

 

삼표 측은 파견관계에 의한 직접고용청구권과 손해배상청구권도 다른 채권과 동일하게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근로자 측은 이 채권이 회생채권에 해당하지 않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근로자 측 손을 들었지만 대법원은 파견법 취지 등을 고려해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2012년에 개정된 파견법은 사용사업주가 파산 선고를 받거나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는 등 미지급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는 경우 직접고용의무 적용이 제외된다고 규정한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용사업주에 대해서도 직접고용의무를 부과하면 사업의 효율적 회생을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직접고용 예외규정을 둔 입법 목적과 취지를 고려하면 2012년 개정 파견법에 따라 사용사업주에 대한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있은 후에는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하지 않고 회생절차 개시 결정 전에 직접고용청구권이 발생한 경우에도 소멸한다"며 "다만 사용사업주의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파견근로자는 그때부터 새로 발생한 직접고용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차별적 처우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회생 개시 전에 행사하지 않아도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익 채권이라는 이유다.

 

회생 시 관리인도 차별적 처우를 시정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관리인이 차별적 처우를 시정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새로운 불법행위가 되고 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공익채권이 돼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근로자 측을 대리한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대법원은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21조를 근거로 차별을 받았음을 이유로 사용사업주를 상대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러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민법 제766조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밝혀 그동안의 논란을 잠재웠다"며 "이제 파견근로자가 파견법 21조를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최대 10년 치의 임금차액 상당액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파견근로자의 직접고용청구권은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에 소멸한다고 본 점은 다소 아쉽지만 대신 회생절차가 종결되면 직접고용청구권이 새롭게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또 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기간에 대해서도 파견법 제21조를 근거로 파견근로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 현실적으로 파견근로자들에게 크게 우려스러운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지예 기자 jyjy@elab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