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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양도 채무자에 통지않고 돈 받아 써도 횡령죄 불성립…대법, 판례변경
2022.07.01

채권양도계약이 이뤄진 뒤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통지하지 않고 돈을 받아 임의로 처분했더라도,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새롭게 나왔다.


채권양도인이 사후적 사정을 이유로 계약을 불이행한 경우라도,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민사법적으로 해결하면 족하고 별도로 형사처벌까지는 할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종전 대법원 판례는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기 전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추심해 수령한 금전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채권양수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권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수인이 아니라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하고, 채권양도인이 위 금전에 관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앞서 인천 남구의 한 건물 1층을 빌려 식당을 운영하던 A씨는 2013년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식당의 양도를 의뢰했다. 이후 A씨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통해 B씨에게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양도했다.


A씨는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양도한 당시 식당과 순창군 토지 일부를 교환하기로 계약했는데 이후 교환대상인 토지를 놓고 갈등이 생겼다.


이에 A씨는 양도 이후에도 식당 건물주인 임대인에게는 채권을 양도했다는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는데, 2014년 3월 건물주인으로부터 임차보증금 1146만원을 돌려받고 이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채권양도인 A씨가 채권양도 사실을 건물주인에게 통지하지 않고 건물주로부터 보증금을 받은 것이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가 성립하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A씨가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B씨에게 양도하고 B씨를 위해 보관한다는 사정을 인식한 상태에서 고의로 보증금을 받아 소비함으로써 횡령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보고 유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종전 판례를 변경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채권양도인이 대항요건을 갖춰 주기 전 추심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은 채권양도인에게 귀속할 뿐이고 채권양수인에게 귀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즉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 사이에 어떤 위탁관계가 설정된 적이 없고 △채권양도인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양수인을 위해 '대신 금전을 수령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채권양도인이 수령한 금전의 소유권이 수령과 동시에 채권양수인의 소유로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채권양도인과 채권양수인은 통상의 계약에 따른 이익대립관계에 있을 뿐, 횡령죄의 '보관자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신임관계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조재연·민유숙·이동원·노태악 대법관은 종전 판례가 타당하기 때문에 A씨에게 횡령죄 유죄를 인정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채권양도인이 채권양도 통지를 하기 전 채권을 추심해 금전을 수령한 경우 원칙적으로 금전은 채권양수인을 위해 수령한 것으로서 채권양수인의 소유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재산 보호 내지 관리를 대행하는 지위에 있으므로 금전에 관해 채권양수인을 위해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종래 판례가 타당하지만, 이 사건은 종래 판례가 적용되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에 A씨에게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별개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니라면, 그러한 계약의 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제한해 온 대법원 판례 흐름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권양도 영역에서도 횡령죄의 구성요건인 ‘재물의 타인성’과 ‘보관자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함으로써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태도를 강화하는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sewryu@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