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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하면 해제…" 속도 내는 서울 재개발
2019.03.17

내년 30여곳 일몰제 도래
주민 반발에도 서울시 강행

동대문 전농뉴타운 8·12구역
동의서 등 조합 설립 잰걸음
성수2구역 동의율 50% 넘겨


내년 봄에 적용되는 `재개발 일몰제`를 피하기 위해 그간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조합을 설립하는 등 사업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재개발 일몰제는 일정 기간 사업에 진척이 없는 정비구역을 시도지사가 직권으로 해제할 수 있는 제도다. 내년 봄에 일몰제가 적용되는 구역이 서울시에만 30곳에 달해 주민들과 서울시의 마찰이 우려된다.


17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에 위치한 전농8·12구역은 최근 조합 설립을 위한 동의서 징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동대문구 전농동 204 일대에 위치한 전농8구역 추진위는 지난해 12월 주민총회를 개최한 뒤 올해 1월부터 조합 설립을 위한 동의서를 받고 있다. 현재 동의서는 50%가량 접수된 상태로, 추진위 측은 오는 10월까지 조합 설립에 필요한 75%를 채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구역에는 지하 2층~지상 20층 규모 약 1900가구가 들어설 계획이다. 2005년 조합설립추진위가 만들어지고 2008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받았지만 아직까지 조합이 설립되지 못했다.


전농8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재개발 일몰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동의서 징구 작업을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며 "청량리 역세권 개발 등 호재가 많기 때문에 주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조합 설립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같은 뉴타운 안에 위치한 전농12구역(답십리12구역)도 지난해 말 추진위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조합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전농12구역은 2007년 추진위가 만들어졌지만 역시 조합을 설립하지 못했다. 이 구역은 지하 3층~지상 30층 규모 총 474가구를 건립할 계획이다.

50층 초고층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내 2지구도 조합 설립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2011년 2월 4개 지구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1·3·4지구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았지만 2지구는 아직 조합이 없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여의도와 함께 서울에서 유일하게 50층 높이 재건축을 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2지구가 일몰제에 적용돼 구역이 해제되면 다른 구역들도 50층 재건축의 꿈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가 4개 지구에 대해 동시에 건축심의를 하겠다며 심의를 계속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2구역 추진위 관계자는 "현재 동의서를 52%가량 받았으며 이르면 8월에 75%를 채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주민들 사이에 일몰제 적용을 피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동의서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그간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재개발 구역들이 조합 설립을 서두르는 것은 내년 3월 적용되는 `재개발 일몰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2012년 1월 31일 이전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2020년 3월까지 조합을 설립하지 못하면 정비구역 지정이 해제된다.


추진위원회 설립은 토지 등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조합 설립은 토지 등 소유자 75% 이상 동의와 토지 면적 절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동의율을 채우기 쉽지 않다.


은평구 증산4구역은 조합을 설립하지 못해 일몰제가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2014년 8월 추진위원회가 설립됐지만, 2년 뒤인 2016년 8월까지 조합 설립 동의율인 75%를 채우지 못했다.


이에 추진위는 토지 등 소유자 32%의 동의를 얻어 2년간 해제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서울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산4구역 추진위는 이에 반발하며 계속 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증산4구역의 한 주민은 "13년간 사업이 진행되길 기다려왔는데 이제 와서 시가 개발을 취소한다고 하니 막막한 심정"이라며 "재개발을 노리고 들어온 투자자도 있지만 동네가 좋아지길 원하는 원주민들이 대다수인데 서울시가 이 같은 주민들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려 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기한 연장을 거부했고, 대법원 행정소송에서도 추진위가 패소했다"며 "일몰 기한에 대해서도 국토교통부·서울시가 법원에 입장을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일몰제처럼 시간 제한을 두는 것은 주민 의견 조율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재개발 사업을 위축되게 만들어 주택 공급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정책실장은 "개발이 잘 추진되지 않으면 시가 나서서 원인을 파악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시간 제한을 두는 것은 사업을 위축시킬 뿐"이라며 "오랫동안 사업을 추진해 온 주민들이 규제 때문에 절망감을 느끼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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